레저&스포츠

신비의섬 울릉도 MYSTERIOUS ISLAND ULLEUNGDO

등반기

일선암등반

작성자
mystery12
작성일
2007-12-27
첨부

▶ 일선암등반

글 : 삶과 산 민 변준 기자

사진 : 사람과 산 심 병우 기자

저동과 섬목을 오가는 충무호가 섬목에 도착할 무렵 깍새섬 쪽에서 모타보트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타난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일선암까지 갈 독선이다.

배에는 선주 정 이환(42세)와 북면 예비 군 중대장 이 재도(43세)가 타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배에 올라탔다. 깍새섬을 지나니 이물너머로 삼선암이 보인다.

그 중 우리가 오를 일 선암은 다른 두 개의 섬에서 서북쪽으로 100m 가량 떨어져있다. 정상부분이 뾰죽하게 갈라져 가위바우라 불리기도 한다.
정찰을 위해 일선암을 한 바퀴 돈다. 동벽에는 빛이 바랜 자일 한 사리가 있다. 90년 여름 서울의 백두산악회에서 회수 못한 것이다.

이번 등반에서 이걸 회수해 불태워주기로 백두산악회 김병양씨와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 서벽은 매끈한데 직벽에 미세한 크랙이 길게 찢어져 있다.

등반의 유혹을 느꼈지만 배를 대기가 까다로워 남벽을 오르기로 한다. 남벽은 길고 넓은 크랙으로 되어있고 중간부분이 100도 가량의 하늘벽으로 되어 있지만 우선 배를 대기가 수월하다. 82년 대구 왕골산악회에서 초등했던 루트다. 배를 바위에 바짝 붙인 뒤 크랙에 프렌드를 끼우고 배를 고정시켰다. 파도가 일 때마다 배가 출렁인다. 따개비와 거북손 같은 것들이 바위에 덕지덕지 붙어있고 물속에는 미역이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배 안에서 안전벨트를 차고 암벽화를 신었다. 9시 25분 두 세 명이 앉을 만한 평평한 바위에 올라선 신상만(충남대농대산악회 29세)가 앞 장을 선다. 행동이 조심스럽다.
바위가 날카로와 조금만 실수하면 칼에 벤 듯한 상처가 날 것만 같다. 낙석의 위험이 있어 배는 바위에서 멀찍이 떨어진다. 섬 주위에서 활공을 즐기던 괭이갈매기 무리 가운데 한 마리가 낮게 내려오더니 신씨 머리 위를 "꽤-앵"울면서 날아간다.

잠시후 신씨의 "완료"소리가 들린다. 메아리로 "완료 완료 완료"하며 울린다. 발 아래는 파도가 출렁이는 메아리 때문에 깊은 산 속 같다. 산에서야 이를 산울림이라 한다지만 바다에서는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어 심병우 기자가 오른다. 그리고 기자 차례다. 바닷바람으로 생긴 바위 표면의 구멍들이 달 표면 같다. 부식이 심한 바위라 조심스럽다. 기차바퀴를 망치로 두드려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기술자 같이 바위를 두드려 본다. 얇은 바위에서는 기타의 1번 줄 같은 맑은 소리가 난다.

살살 쳤는데도 바위가 "뚝"하고 떨어져 나간다. 낙석은 "풍덩"소리를 내며 바다로 빠진다. 첫마디는 25m 지점까지다. 바닥이 울퉁불퉁한 테라스에 모여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해안도로에는 가끔 차와 오토바이가 오간다.

10시 20분, 신씨가 둘째 마디를 오르기 시작한다. 거의 직벽이다. 약간 하늘벽을 이룬 크랙에서 머뭇거린다. 어려운 구간은 아니지만 확보물 설치하기가 까다롭고 바위가 부서질 것 같아서인 듯하다.

섬을 일주하는 유람선 한 척이 지나간다. 스피커에선 안내방송 소리가 요란 하다. "이 바위는 일선암입니다. 옛날에 하늘나라 선녀가 여기에 내려와 놀다가 경치에 반해 머물렀습니다. 그러다가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서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스피커 소리를 귓가로 흘리며 신씨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와아"하며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뒤돌아 보니 유람선 뱃전에 나와있던 관광객들이 일선암 벽 중간에 매달려 있는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괜히 머슥해진다. 손을 흔들어주자 관광객들은 발까지 굴러가며 환호한다. 스피커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보세요. 앞에 있는 이 바위는 삼선암인데 …" 해도 관광객들의 눈은 우리한테서 떨어질줄 모른다.

배가 삼선암 너머로 사라지자 관광객들의 눈총을 의식해 가만히 있었던 신씨는 마음을 굳힌 듯 다시 오름짓을 한다. 동작이 조심스럽지만 과감하다.

신씨가 두 번째 마디를 마치고 심기자가 오를 무렵 모터소리가 나서 아래를 보니 우리가 타고 온 배다. 배가 등반루트 바로 아래로 오길래 "바위에서 좀 떨어져 계셔요. 낙석이 심해요."하니 멀리 비켜난다.

아니나 다를까 배가 있던 자리로 낙석이 떨어진다. 차례가 와 날카로운 암각을 피해가며 첫 번째 확보물을 통과한다. 이어 아까 신씨가 머뭇거리던 곳이다.

바위 상태는 밑에서 보기보다 좋지 않다. 레이백으로 오를까 크랙 오른쪽의 페이스로 등반을 할까 굴리하다 까치발을 하고 손을 쑤셔 넣은 다음 몸을 끌어올린다.

선등이라면 이러한 무리한 자세는 할 수 없으리라. 페이스 등반으로 자세 를 바꾸려니 여의치 않다. 왼 손을 크랙 깊숙히 집어넣고 반침니 등반자세로 오른다. 같은 동작을 몇 번인가 반복하니 시야가 트인다.

둘 째 마디를 완료한 시간은 정오. 끝은 좌우로 두 봉우리 사이의 안부로 서쪽에서 보면 가위의 맞모금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그 잘록이의 촉스톤에 하강용으로 쓰는 링슬링이 보인다. 정상은 이 안부 동북쪽에 있는 봉우리다. 쉬운 구간을 10여 미터쯤 올라가야 된다.

삼각뿔 같은 정상에 여러 명이 서있기가 마땅치 않아 둘째 마디가 끝나는 안부에서 확보를 하고 담배를 피운다. 하얀 담배연기가 해풍에 흩날린다. 괭이갈매기의 날개짓이 부드럽다. 발아래 펼쳐진 바다는 푸르다 못해 옥색이다. 파도를 바라보니 섬이 느리게 흘러간다. 눈을 "깜박"하고 정신을 차리니 섬은 제자리에 있다. 물살 때문에 생긴 착시현상이다.

12시 20분에 하강을 시작한다. 첫 마디 하강을 마칠 무렵 해안 경비정이 사이렌을 울리며 온다. 모르는 척하고 우리는 하강을 계속한다. 모터보트에서 기다리던 이재도씨가 경비정으로 올라가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이내 내려온다.

경비정의 대원들이 우리의 하강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그들은 엔 진소리를 힘차게 울리며 떠난다. 13시에 하강을 완료하고 자일 회수를 한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자일 끄트머리가 바닷물에 빠졌다.

배에 오르니 울릉산악회 3대 회장인 이 영대(45세)씨가 막걸리를 권한다. 단숨에 들이키고 안주할 만한 것을 찾으니 이씨가 따개비를 내민다. 주머니칼로 살을 도려내어 바닷물에 씻어 먹어보니 맛이 기막히다. 순식간에 여러 순배가 돈다.

이물쪽 배바닥에는 뽀족뾰족 솟은 거북손이 있다. "이거 삶아 면 둘이 먹다 여럿이 죽어도 모를 만치 기막힙니데이" 추산마을 부둣가에 배가 도착할 무렵에는 키를 잡은 정씨만 빼놓고 모두들 얼굴이 불콰하다. 부두로 오르자 정씨는 바쁘다며 시동을 걸더니 이내 멀어진다.

짐을 챙겨들고 울릉산악회에서 숙박지로 잡아준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밭일을 하던 추산리 이장 정만수(42세)씨가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신세를지지 않으려 했지만 거북손 삶을 양동이와 불을 빌려 번거롭게 하고 만다. 얼마후 삶은 거북손과 소주 됫병이 나오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몰려와 회관 앞마당은 졸지에 회식장소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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