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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섬 울릉도 MYSTERIOUS ISLAND ULLEUNGDO

등반기

성인봉 겨울등산

작성자
mystery12
작성일
2007-12-27
첨부

▶ 성인봉 겨울등산

울릉도는 연간 강수량이 1,485mm로, 우리나라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계절적으로는 겨울 강수량이 더 많다.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하계다우형(夏季多雨型)이지만, 울릉도는 그 반대인 것이다. 이는 겨울에 북서풍이 다습한 해상을 지나며 수증기를 운반해오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역이 겨울 가뭄에 시달리고 있을 때인 1월10일경에도 울릉도에는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울릉도에서도 특히 나리분지는 우리나라 최다설지역으로, 분지내 주민들 말에 의하면 겨울에 대개 2∼5m의 적설량을 보인다고 한다. 나리분지의 적설량이 이러할진대 나리분지보다 해발고도가 500m쯤 더 높은 지역인 성인봉 일대야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다수 산꾼들이 겨울 울릉도 성인봉에 대해서만큼은 침묵하게 되는 소이가 여기 있다. 제 아무리 항우장사라 한들 가슴팍 가까이 빠져드는, 게다가 유달리 습하여 몸에 척척 들러붙듯 하는 울릉도 눈밭을 헤치고 성인봉을 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하루에 여섯번 변한다.'고 할만큼 울릉도 날씨는 오락가락이다. 아침에는 청명한 하늘이었다가도 어느새 뿌옇게 사방이 가려지며 싸락눈이 뿌린다. 때문에 1만여명 울릉도 사람 중에도 50여명 울릉산악회 회원들만이 적설기 성인봉의 비밀을 알고 있을 뿐이다.

울릉산악회의 건각들은 1월 들어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씩 단체로 성인봉을 오른다. 반드시 예닐곱명 이상이라야만 길을 나선다. 설피를 착용해도 허벅지 이상 빠져드는 눈길을 한 사람이 한번에 20m이상 전진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여러 회원이 교대하며 전진하기는 것이다. 그러면 도동∼성인봉∼말잔등∼저동 코스로 가까스로 12∼13시간만에 돌아 내려올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이 겨울에 이렇듯 고생스레 성인봉을 오르는 이유는 오직 하나, 성인봉∼말잔등 간의 겨울 풍광을 즐기기 위해서다. 역설적이게도 여름에 이 구간을 밟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잡목과 덩굴, 산죽 등이 얼기설기 얽혀 있어서 엄청난 고생만 하게 된다. 그러나 겨울에는 이 모든 것이 깊은 눈에 파묻히고, 그 대신 길고 큰 눈처마 위로 만발한 눈꽃 길이 형성되는 것이다."그 눈꽃 길이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즐길 만한 것이냐"고 되묻자 울릉산악회 이경태씨는 그야말로 백문이 불여일견임을 강조할 뿐이다.

결국 겨울 성인봉을 산악스키로 답사한다는 파발문을 돌리자 한국 산악스키회(회장 전담)의 여러 회원이 금방 동참할 뜻을 밝혔다. 류재형(47),윤호균(45),이상배(45),진교식(43),김성민회원(39), 그리고 반도산악회 박동화씨(39)까지 모두 8명의 일행이 1월 13일 아침 울릉도 행 쾌속선 썬플라워호가 떠나는 포항여객선터미널에 모였다. 태풍주의보는 해제됐지만 역시 먼바다의 파도는 육지는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구토증을 참아가며 3시간만에 다다른 울릉도의 겨울은, 그러나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다. 길거리의 눈은 절벅거리며 녹아내리고 있었고, 멀리 성인봉 근처의 산비탈도 수목이 짙은 닷인가, 거무스름한 빛이었다. 수목들 밑둥으로 그저 눈이 한 겹 정도 얄팍하게 깔린 것으로만 보였다. 지난 며칠간 연속해 폭설이 내렸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이경태씨는 "울릉도는 전반적으로 날씨가 푸근하여 산 아래쪽은 눈이 빨리 녹지만 고지대는 그냥 남아 있을 것"이라고 취재진을 안심시킨다. 울릉산악회 이경태씨는 이미 몇 해전에 산악스키를 마련, 성인봉∼말잔등 구간의 풍치를 혼자서도 간혹 즐겨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사정상 동행을 못하고 그의 후배인 최희찬씨(32)가 산악스키를 익힐 겸하여 길 안내자로 동행키로 했다.

아침 8시30분경 도동항의 중앙식당을 떠나 20분쯤 걸어 대원사 뒤 가파른 언덕빼기 길로 접어들었다. 10분 뒤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나 고 성인봉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곳은 동백과 산죽,소나무의 푸른빛으로 아예 봄 분위기이고, 여기저기 검은흙도 드러나 있다. 이러다간 무거운 산악스키를 배낭에 단 채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산나물,삼백초 팝니다.'라고 쓴 팻말을 내건 마지 막 민가에 이어 휴식처(여름에 덩굴식물들로 그늘을 드리우게 할 콘크리트 구조물과 벤치 등이 놓인 곳)를 지나고 나서부터 눈이 서서히 깊어진다.

오전 10시쯤 478.5m봉 동쪽 안부의 휴식처에 올라섰다(GPS로 측정한 좌표는 북위 37도 29분 18초, 동경 130도 53분 48초). 이 휴식처를 지나 478.5m봉 북사면을 가로질러 난 길로 접어들자 비로소 무릎 넘게 눈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 스키를 착용했다. 등 산로 초입부터 시작된 누군가의 발자국은 이곳에도 여전하다.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했다. 고도가 높아지면 오리나무, 고로쇠나무 등 수목들의 허리도 한결 굵어진다. 흠 하나 없이 미끈하게 뻗은 굵은 활엽수목의 줄기들과 그사 이를 채운 희디흰 눈. 그리고 푸른 하늘이 한데 어울려 주는 느낌은 뭐랄까, 눈밭 한가지만 있을 때보다, 혹은 푸른 하늘만 펼쳐졌을 때보 다, 혹은 푸른 하늘만 펼쳐졌을 때보다 훨씬 더 정갈하고 맑은 느낌이다.

516.7m봉 북사면으로 접어들자 고정로프가 설치된 지점이 나타난다. 이곳은 여름에도 툭하면 추락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니 겨울에는 한결 더 위험하다. 급경사 산비탈 아래쪽으로는 만약의 경우 추락을 막아줄 나무도 없어서 긴장이 더했다. 한사람은 스키를 벗은 상태로 지났 는데, 발이 죽죽 미끄러지거나 깊이 빠져드는 등, 스키를 신은 상태보다 오히려 더 불안한 상태로 겨우 벗어났다. 이러한 위험지는 그 10분 뒤 또 한 군데 나타났다. 스키를 착용한 상태라 하여 별달리 더 빠르고 안전한 루트를 택할 여지도 없어 보였다. 능선을 곧장 따르는 방식은 기복이 심하여 오히려 스키 등반에는 좋지 않다는 최희찬씨의 충고였다.

여름에 간이매점이 서는 휴게소를 지나 도동∼성인봉간 등산로의 중간 휴식처로 이름높은 팔각정에 12시경 다다랐다(GPS좌표 북위 37도 29분28초, 동경 130도53분01초). 정자 안까지 두툼하게 날려와 쌓인 눈 가운데를 파내고 서둘러 버너를 피워 라면을 끊였으나, 식사를 마치 니 어느새 오후 1시다.

길은 여전히 능선 우사면으로 나 있다. 산악스키의 바닥에 부착한 실 (seal)은 어느 정도 이상의 경사가 되면 뒤로 미끄러진다. 때문에 급경사지대에서는 좌우로 지그재그씩 등행을 해야 한다.

팔각정을 떠나 역시 능선 우사면을 길게 가로질러 오후 1시 45분, 바람등대라 부르는 휴식처(GPS좌표 동경 북위 37도 29분 29초, 동경 130도 52분 37초) 에 다다를 때까지도 별로 그럴 곳이 없었다. 그러나, 바람등대 이후 능선길의 경사가 급해졌다. 다행히 등산로 자체가 갈짓자로 나 있어 비교적 편하게 올랐다. 다만 성인봉 직전의 급경사 지대에 이르러서는 뒤로 스키가 슬슬 밀려나는 구간이 이었다. 이런 곳에서도 큰 불편없이 꼿꼿이 직선상으로 오르는 사람이 있어 눈을 끌었다.

그가 착용한 다이나피트 산악스키 세트는 무엇보다 무게가 기존 산악스키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바인딩을 부착한 상태에서의 무게가 하간 플레이트에 실브레타 바인딩을 부착한 경우 한 쪽의 무게가 2.5kg에 육박하는데 반해 다이나피트는 1.3kg으로 약 절반밖에 되 지 않는다. 이렇듯 가볍기에 장시간 등행시 한결 다리 힘이 덜 든다. 기복이 심한 지형에서는 발을 자유자재로 놀릴수 있으냐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급경사에서 방향을 틀 때 발이 가벼운 만큼 편하다. 또한 그의 다이나피트 스키는 뒷굽이 40도 정도까지 들리게 할 수 있어 급경사도 한결 쉽게 돌파했다. 그래서 그의 스키에는 '벤츠'라는 별 명이 붙었다.

벤츠를 앞세우고 성인봉 정상에 다다를 무렵 엄청난 설경이 펼쳐진다. 육지부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설화 터널이다. 굵은 활엽 수의 가지들이 습한 눈을 켜켜이인 채로, 흡사 우아한 동작의 무용수가 팔을 늘이듯 땅바닥까지 늘어져 있다. 그렇게 눈으로 둔갑한 나뭇 가지들이 수도 없이 겹쳐 보여 사뭇 눈을 어지럽게 할 지경이다. 이미 등산 경력이 20년 넘었고 히말라야 고봉, 유럽 알프스 벽등반 체험자도 일행 중엔 여러명 있지만 한결같이 성인봉 설경에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성인봉 정상 직전에는 예의 그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워둔 휴식처가 있다. 이곳에서 깊은 눈을 다지며 20m 더 올라가자 성인봉 정상 표석이 선 정상이다.(북위 37도29분42초, 동경 130도52분09초).북쪽으로 10m쯤 아래의 공터에서는 오늘 우리가 가야 할 성인봉∼나리령 간의 능선길과 나리분지내의 민가들이 한눈에 잡힌다.

시각은 벌써 오후 2시 45분. 성인봉∼나리령∼나리분지 구간이 아무리 내리막 위주의 능선길이라 해도 거리가 도동∼성인봉까지의 오름 길 5km와 거의 비슷하고, 급경사지대를 만나면 지그재그 활강을 하느라 마치기 전에 날이 저물 것이다. 그러나 설경에 취한 일행들은 "랜턴 켜고 가면 되지 뭘 그러냐"면서 팔도강산 주유 나선 한량 걸음걸이다.

성인봉에서 말잔등으로 거의 평탄하게 이어진 능선길 오른쪽(남쪽)으로 주로 설화가 피어 있다. 이는 북서풍이 불어닥치며 이쪽으로 눈가 루를 몰아부친탓이기 쉽다. 커다란 눈 처마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덧쌓이며 형성돼 있다. 이렇듯 눈이 깊은 탓인가. 아무도 이 능선을 우리 일행 이전에 밟은 흔적은 없다.

결국 말잔등에 다다랐을 때 주위의 숲부터 어두워진다. 커다랗게 눈의 둔덕을 이룬 곳 저편의 허름한 건물 왼쪽옆을 지나 나리령을 향했 다. 경사가 갑자기 급해진다. 실을 부착한 상태에서도 가속도가 붙을 정도다. 아직 산악스키가 익숙치 못한 두어 사람은 금방 뒤로 처지고 만다.

갈짓자로 경사를 죽이며 내려가기를 1시간 남짓 했을까. 경사가 약해져서 능선길을 그대로 따르는 활강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너무 어두 워진 상태라 역시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나리령을 목전에 두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나아가자 곧 하산로가 나왔다.

이 하산로변을 갈짓자로 오가며 내려가다가 급경사 바위지대로 변하는 곳에서는 아예스키를 벗어들고 하산했다. 주황색 아크등로 밝혀진 분지 안의 나 리촌식당(북위 37도31분2초, 동경130도52분31초)에 마지막 사람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7시가 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9시15분 경에야 길을 나섰다. 어제의 하산길이 너무 고되기도 했지만 오늘은 오름길의 거리나 하산길의 어렵기가 어제보다는 한결 덜 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일단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리분지를 가로질러 나아갔다. 숲지대 가운데로 난 널찍한 길옆에 '성인봉 가는 길'이란 표지판도 보인다. 길 왼쪽에 가지가 일곱 가닥이어서 칠지송이라 이름한 소나무는 그러나 가지가 이미 2개가 썩어서 잘 려나간 채다.

섬백리향 자생지는 테니스장처럼 울을 둘러두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투막집(북위37도30분25초, 동경130도51분42초) 옆을 지나 15분쯤 더 걷자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신령수다. 옆에 큼직한 울릉도 관광안내판이 선 이곳 신령수(좌표 북위 37도30분09초, 동경130도51도46초)에서 잠시 쉰 다음 우리는 주등산로를 버리고 정서쪽, 형제봉과 미륵산 사이의 안부를 향해 숲을 가로질렀다.

일단 능선에 오른 다음 미륵산 남쪽 약 300m지점에서 서쪽으로 뻗은 완경사 능선 을 내리달릴 참이었다. 이 능선은 완경사인 데다 나무도 별로 없는 개활지가 펼쳐져 있다는 울릉산악회원들 말이었다. 성인봉과 형제봉 사이로 성인봉으로 이어진 등산로가 아 있지만 이 길로 오르면 형제봉을 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될 것 같았다.

예정대로 형제봉∼미륵봉 능선 동쪽의 계곡으로 접어들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다.처음에는 일직선상으로 전진이 가능했으나 나중에는 방향 바꾸기도 까다로울 만큼 급한 경사면이 나타났다. 이경사면을 갈짓자로 가까스로 치고 올랐으나 결국 바위퉁성이의 급경사 지대가 나온다.

그예 짙은 눈보라도 휘날렸다. 도리없이 스키를 벗어 배낭에 꽂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가로질러 오르자 곧 형제봉 북쪽 능선상의 안부였다.이때 이미 시각은 오후1시가 넘었지만 앞으로는 내리막 일변도라 걱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형제봉 북쪽 700m지점의 작은 봉 정상을 지나자마자 절벽이 나타났다. 높이 약15m의 70도쯤 되는 절벽에는 만병초나무가 무성해 가지를 잡고 내려가면 될 터이지만 스키가 문제였다.

이 스키를 한짝씩 밑으로 흘려 내려보내고, 엉뚱하게 저 아래 협곡까지 내려가 꽃힌 스키를 찾아오고 하는 사이에 이 구간에서만 2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최대한 속도를 냈지만 미륵산을 앞에 두고 왼쪽으로 가로지르기를 하는 사이 어둑신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침 능선은 완경사이고 길은 곧게 나 있어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우리는 이 능선의 허리춤 근처의 널찍한 개활지로 내려섰다.

놀랍게도 울릉산악회의 이경태씨가 여기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막 서편 능선 위로 스러지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내리달렸다. 농막을 지나자 길게 굽이지며 도로가 나왔다. 이 도로의 끝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가자 지름길로 먼저 내려간 이경태씨가 미리 대기시켜둔 소형 트럭 앞에서 일행을 맞아주었다.

그 이후 아직 완공이 안된 태하리 터널 앞까지 일행을 태워다주고, 찬 바람이 도는 컴컴한 굴 2개를 지나 다시 차도가 연결되는 지점에 미리 지프차량을 세 대나 대기시켰다가 취재진을 도동까지 실어다주는 등, 울릉산악회 회원들의 도움이 매우 컸다. 울릉산악회 회원 여러분 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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