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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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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포경선의 항해일지

독도를 최초로 발견한 서양배는 과연 프랑스의 포경선 Liancourt일까? 지금까지는, 1849년 1월 27일 프랑스의 포경선 ‘리앙끌’이 독도를 최초로 발견하였으며, 당시 발견한 배의 이름을 따서 독도는 소위 ‘리앙꼬르岩’으로 세계에 알려졌다.

그런데, Liancourt號보다 9개월 정도 앞선 1848년 4월 17일 미국의 포경선 Cherokee號가 독도를 발견하였다는 사실이 새로이 밝혀졌다.

즉, Cherokee호 선장 제이콥 L.클리브랜드의 항해일지 4월 16일자에 의하면 終盤에 two small islands를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개의 작은 섬 그것은 바로 독도이다. 당시 포경선들이 사용하고 있던 海圖에는 독도가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체로키호는 4월 17일 오전 4시에서 12시 사이에 독도를 발견하였다. 이는 독도발견에 관한 서양최초의 기록이 된다.

이후, 고래잡이를 위해 동해를 찾은 미국의 포경선들은 당시 해도에 실려있지 않은 섬, 독도를 발견하게 된다. 19세기 서양인의 눈에 독도는 어떠한 모습으로 비추어졌을까?

Moctezuma호는 1849년 3월 2일, 3일 9일 울릉도와 함께 pinnacle rock을 보았다고 항해일지에 적고 있다. 독도의 정상이 뾰족하기에 pinnacle rock 즉 첨탑岩이라 불렀을 것이다.

또, 3월 18일 William Thompson호는 울릉도 동남쪽 40마일쯤에 어떤 해도에도 없는 3 Rocks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로, 세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독도를 보았던 것이다. 이는 성종대에 독도를 三峰島로 불렀던 우리의 기록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Cambria호는 1849년 4월 28일에 울릉도를, 29일에는 海圖에 실려있지 않은 the small islands를 보았다고 적고 있다. 더욱이, 이 일기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그림까지 그려두고 있다. 이는 종래 알려져 있던 프랑스의 해군함정 콩스탄틴호가 1856년 그린 독도그림이나 러시아의 군함 팔라스호가 1857년 그린 독도그림 보다 7∼8년 앞서는 최초의 독도그림이 될 것이다.

Henry Kneeland호는 1853년 4월 18일 울릉도와 seal rock을 보았으며, seal rock에 상륙하여 물개 7마리를 잡았다고 쓰고 있다. seal rock 즉 물개바위는 바로 독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독도에서 잡았다는 seal(물개)은 강치(海驢)일 것이다. 이 강치를 물개로 오인한 것이었다.

Florida호는 1857년 3월 27일 Dagelet Rock(울릉岩)을 보았다고 하며, 4월 3일에는 울릉도는 뒤쪽에 울릉岩은 앞쪽에 있었다고 쓰고 있다. 뿐만 아니라, 4월 7일에는 울릉도와 울릉岩의 중간쯤에 배가 있었는데, 모두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Dagelet Rock(울릉암)은 바로 독도를 가리킨다. 뿐만 아니라, 이 기록은 독도가 울릉도(Dagelet Island)의 子島 혹은 屬島임을 시사한다. 즉, 새로이 발견한 독도를 Dagelet Rock이라 이름지음으로서, 플러리다號는 독도를 울릉도(Dagelet Island)의 屬島로 인지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1860년 4월 11일 Florida호는 울릉도를 보았으며, Asses Ears라 불리는 바위를 지났다고 한다. 여기서 the rocks called Asses Ears(당나귀의 귀라 불리는 바위)는 바로 독도를 가리킨다. 동도와 서도로 솟아있는 형상이 마치 나귀의 두 귀처럼 보였기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또한 문맥상에서 보아 이전에도 그렇게 불렀던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항해일지는 독도가 울릉도와 분리될 수 없는 우리의 영토임을 반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물이 될 것이며, 서양최초의 독도발견이 리앙꼬르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인식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 부서명 독도박물관
  • 성명 학예연구
  • 전화번호 054-790-6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