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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한 후 일본은 러시아함대를 감시하기 위해서 울릉도와 독도에 일본 본토와 연결된 전선망을 설치하는 동시에 망루를 세웠다.

일본군부는 원활한 전쟁수행을 위해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일본 정부에서는 1905년 1월 28일 각의결정 후, 같은 해 2월 22일 ‘시마네현(島根縣) 고시 40호’를 통해 독도를 일방적으로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

위 고시 40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북위 37도 9분 30초 동경 131도 55분. 오끼도와의 거리는 서북 85리에 달하는 도서를 죽도(竹島-다께시마)라 칭하고, 지금부터 본현 소속 오끼도사(隱崎島司)의 소관으로 정한다."

이 불법 편입사실은 러일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통감정치가 확립된 후인 1906년 음력 3월 5일에야 대한제국에 알려졌다.

이 고시는 현재 일본에 의해 독도의 편입이 ‘무주지선점론(無主地先占論)’에 입각하여,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영토편입이라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즉, "독도는 1905년 당시 주인없는 땅(無主地)이었으므로 일본이 [무주지(無主地)를 선점(先占)할 경우 영토획득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국제법상 요건을 충족시켜 시마네현(도근현)에 편입시킨 합법적인 일본의 영토"라는 것이다. 독도가 강제편입되어 있었던 시마네현에는 지금도 "다케시마(竹島)를 회복하자"는 내용의 입간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고시는 법적효력이 전혀 없는 것이며, 그 자체가 고시로 존재하지 않은 회람(回覽)에 불과한 것이었다.

첫째, 독도는 당시 주인없는 땅(無主地)이 아니었다.

독도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로 울릉도에 군수를 파견할 때, 이미 그 관할 구역(石島:당시에 널리 불려지던 ‘돌섬’의 한자식 표기)으로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일본 군부가 독도에 대한 불법 영토편입을 추진하면서 표면에 내세운 일본 어업가 中井養三郞의 ‘리앙꼬島領土編入 貸下願’은 원래 중정양삼랑이 독도근해의 독점어업권을 대한제국으로부터 빌리기 위해서 일본정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인데, 당시 농상무성 수산국장과 해군성 수로부장의 공작에 의해서 대하원(貸下願)에 ‘리앙꼬島 영토편입’이 추가되어, 대한제국정부가 아니라 일본정부에 청원된 것이다.

더구나 당시 일본 내무성은 러일전쟁이 종결되기 전에 독도를 편입시키는 것은, ‘한국정부의 저항’으로 쉽지 않을 것이며, 열강에게 ‘일본이 한국병탄의 야심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할 위험이 있다고 영토편입을 반대하였다.

즉, 당시 영토편입 당사자인 일본은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였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독도의 영토편입은 국제법상으로 불법적인 것이었다.

둘째, 선점(先占)의 경우, 무주지역을 자국의 영역에 편입한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공표하게 되어있는데, 일본은 그러한 절차를 편법으로 처리하였을 뿐 아니라, 편입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일본은 다른 도서(島嶼)의 경우 자국의 영토로 편입할 때 각의(閣議)를 거쳐 해당 관공서와 신문에 고시해온 관행(慣行)과 달리 유독 독도의 경우 소위 [시마네현고시 40호]는 당시 일본의 104개 신문 중 어디에도 고시되지 않았다. 또한 일본의 관보(官報)에 조차도 1905년 6월 5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시에 명시된 ‘다케시마(竹島)’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현재 이 고시의 원본은 유일하게 시마네현청에 단 1장 보관되어 있는데, 이 문건은 1905년 2월 22일 당시 시마네현에서 발간됐던 [시마네현령(島根縣令)]이나 [시마네현훈령(島根縣訓令)] 어디에도 수록돼 있지 않다. 더구나 이 문건에는 회람(回覽)이라는 주인(朱印)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로써 일본이 내세우는 [시마네현고시 40호]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고시가 아니라 관계자 몇몇이 돌려본 ‘회람(回覽)’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통해 일본의 합법성 주장과는 달리 당시 독도 영토편입이라는 것은 극비리에 진행되어야 했던 명백한 침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도는 러일전쟁 중, 일본 제국주의의 확장과정에서 불법 침탈되었으며, 독도의 침탈은 한반도 침탈의 시작이었다. 일본의 억지와는 반대로 [시마네현 고시 40호]는 오히려 역사의 진실을 밝혀 주는 자료가 될 뿐이다.

  • 부서명 독도박물관
  • 성명 학예연구
  • 전화번호 054-790-6591